대찬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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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 함께 걸어가는 대찬병원 소아기형·왜소증클리닉입니다.

[일반-키 연장술] 수술과 스트레스 그리고 염증

관리자2023-01-30
일리자로프 수술을 고려대학교구로병원에서 받게 된 것은 그간의 사연이 있었습니다. 제가 워낙 다른 사람들에 비해 키가 작았기 때문에, 서울대병원에서 키에 대해 꾸준히 검사를 받아왔는데 당시 성장호르몬 주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서울대병원 담당 교수님께서는 돈이 상당히 많이 들고 부작용이 심하다고 말씀해주셨지만 저는 부작용이 심해도 맞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정형편상 호르몬 주사까지 맞을 돈은 없어서 맞지를 못하고 성장에 관해 처방을 잘한다는 유명한의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 한약을 처방받아 먹었습니다. 한약을 1년 동안 먹었는데 갑자기 살이 찌고 잘 먹지 않았던 고기도 먹게 되고 키는 조금 밖에 자라지 않아 한약도 끊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수술하기 전의 키가 153.4cm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의 놀림을 많이 받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다가 더군다나 서울대병원에서는 키가 작으면 베트남에서 살라는 말에 더욱더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최종적인 선택으로 2009년도 7월경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일리자로프 수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침 뉴본 정형외과에서도 일리자로프 수술을 시행한다는 말에 비용을 들여 검사를 한 다음 자세한 상담을 받았습니다. 상담을 받은 결과 외고정 기구와 속성 수술(ISKD)법이 있다고 하시면서 단 10cm까지는 키울 수 없고 다만 5~7cm밖에 키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아버지와 상의를 한 끝에 개인병원보다는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하는 것이 염증 등이 걸렸을 때 종합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종합병원 쪽으로 알아본 결과 고려대학교구로병원이 제일 잘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침 척추측만증 검사 때문에 1년에 한번 씩 정기검진을 위해 고려대학교구로병원에 갔습니다. 매번 갈 때마다 서승우 교수님께서는 키를 키우는 것에 대하여 탐탁지 않게 말씀을 하시다가 송해룡 교수님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바로 송해룡 교수님 담당 전보민 간호사 선생님을 불러주셨습니다. 전보민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일리자로프 수술에 대해 궁금한 것을 설명 듣고 아버지와 상의를 한 끝에 결정을 내려 예약을 하고 바로 수술 날짜를 정하고 최종 검사인 X-Ray, 채혈검사, 심전도검사를 하고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정대로 2010년 3월 29일에 일리자로프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퇴원은 2주 뒤인 2010년 4월 13일에 해서 까치발 수술하기 전까지 계속 외래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뼈가 잘 늘어나지 않자 약 한 달~2주 정도는 뼈를 늘리는 것을 멈추기도 하였지만, 그러한 끝에 10cm를 키웠습니다. 까치발이 생기기 시작한 건 5cm가 넘으면서부터 서서히 오기 시작하더니 7cm~10cm가 되자 걷지를 못하여 결국 휠체어 신세를 져야만 했습니다. 5cm까지는 까치발 운동을 열심히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고 그래서 전혀 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10월초에 까치발 수술을 위해 병원에 다시 입원을 하게 되었고 까치발 수술을 하면서 내심고정까지 박는 수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까치발 수술을 하고서는 약 한달 동안 입원을 했었고 입원을 해있는 동안 까치발 수술을 위해 핀 있던 것 중에서 90도로 올리는 것을 하였습니다. 거의 90도가 돼서 뺐지만 왼쪽은 설 수 있었는데 오른쪽은 설 수가 없어 다시 오른쪽만 핀을 박는 작업을 하고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퇴원을 하고 계속 외래를 다니다가 12월초쯤에서야 오른쪽 핀을 뺐습니다. 오른쪽 핀(일리자로프)을 빼고 약 2주 동안 깁스를 한 후부터 지금까지(2011년 1월 27일~ ) 보조기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교수님께서 멀리 나갈 때만 보조기를 착용하고, 가까이 다닐 때는 보조기를 차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2011년 2월 10일경 왼쪽 핀(일리자로프)까지 뺐습니다.
하지만 2011년 5월 11일 쯤 염증이 찾아와 통증약과 항생제를 먹었는데 통증이 심해지고 걸을 수조차 없어, 병원에 갔습니다. 담당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일단 피검사부터 하고는 염증수치가 높으니 위에 교수님과 함께 상의를 해서 결정을 내려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통증이 심하여 식은땀이 났지만, 회의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언제 답변을 줄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전 일단 통증주사라도 맞고 기다릴 수 있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하여 겨우 통증주사를 맞고 주치의 선생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2시간을 기다렸고 저녁(PM5:00~6:00)에 담당 주치의 선생님 외에 3~5년 차 선생님께서 오셨습니다. 3~5년 차 선생님께서는 X-Ray 촬영 결과, 염증수치 결과, 그리고 염증이 생긴 왼쪽다리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시더니 입원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저는 교수님께서 입원을 하라고 하면 하겠다고 했더니 바로 교수님께 전화 통화를 한 끝에 교수님께서도 입원을 하라고 결정을 내리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름 채취를 하여 확실한 염증반응 검사를 한 후 최종 수술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최근에 염증으로 다시 핀을 단 사람 X-Ray사진을 보여주시더니 이 환자와 똑같은 걸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고, 먼저 입원수속을 밟은 뒤 수속이 끝나면 간호사실로 올라가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피(고름)를 채취를 하여 정확한 염증반응 검사로 어떠한 바이러스인지를 알아보기 위한 검사를 하기 때문에 간호사실에 가있으라고 한 이유라고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아무튼 입원수속이 끝나고 바로 간호사실로 올라갔는데 바로 주치의 3~5년차 선생님과 1년차 정영진 선생님께서 피(고름)채취를 하였고, 다음날부터 수술하기 전날까지(2011년 5월 14일~2011년 5월 16일) 소독을 매일 해주셨습니다.
 
수술동의서는 월요일(2011년 5월 16일)받았지만 마취과에서 작년(2010년 3월 29일)에 수술 3일 뒤에 약간의 호흡곤란이 왔었기 때문에 수술을 미루자고 하면서 호흡관련 검사를 받았으면 하는 의견을 담당주치의 정영진 선생님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정영진 선생님께서는 작년 수술 후 호흡곤란에 대해 물어보셨고, 일단은 수술을 미루고 호흡검사를 받았고, 어떻게 할 것인지 아빠와 저에게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서 수술동의서를 쓰면서 무통주사를 신청을 하였고 수술을 한 뒤 무통주사를 달고 나왔는데, 이틀째 되니깐 피가 섞인 가래가 나오면서 3일째 되는 날 좀 더 심해지고 호흡하기가 힘이 들어 당시에 항생제 맞는 것이 부작용이 있는지 검사를 하였고 항생제에는 부작용이 없었는데, 무통주사에 부작용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바로 제거하였다고 자세한 사항을 말씀드렸더니 마취과와 한 번 더 상의를 해보겠다고 하셨습니다. 1~2시간 뒤 다시 오셔서 최종적으로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하셨고, 난 그저 감사하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이제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게 되었고 수술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도 주치의 선생님과 똑같이 오늘 염증제거를 한 후 안에 있는 핀은 제거하고 밖으로 다시 돌려서 달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속옷을 입었는지 주사를 맞고 왔는지 등등을 수술 대기실에서 간호사 선생님께서 물어보아 나는 친절하게 대답을 하였고, 그리고 30분 뒤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저녁이 되서야 수술실에서 나와 회복실에 있었고 깨어보니 다리가 아프고 춥다고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다리에 가느다란 핀을 박았고, 추운 것은 공기주입기로 따뜻하게 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니 다리가 점점 아파 통증주사라도 맞으면‘안됩니까?’라고 말하니깐 담당 주치의 선생님께 물어보겠다고 하더니 그로부터 약 10분 뒤 통증주사를 맞고 나니 다행히 조금 덜 아팠습니다. 염증검사를 입원해 있는 기간부터 퇴원할 때까지 하였고, 퇴원 할 당시 염증 수치는 6.0이어서 퇴원을 하고 2주 뒤에 오라고 하셨습니다.
 
2011년 5월 13일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침 제가 염증으로 아팠을 당시 이혼 신청을 하셨습니다. 입원을 하기 전에도 약 이틀 동안은 새어머니 집에서 생활하다가 점점 걸을 수 없어서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퇴원(2011.6.8)을 하였을 때는 새어머니 집에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새어머니는 저보고 각서를 써 달라고 하여 각서를 써줬습니다.
 
이런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염증 수치는 다시 18까지 올라갔고, 교수님께서는 빨리 염증제거부터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핀 부위에다 주사를 맞기 전 긁어내는 작업을 하였고, 무척 아프고 쓰라렸지만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고통을 참아야 염증이 완전히 제거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염증수치가 올라간 것이 너무 분하여 어차피 부탁받은 수기도 써야 해서 컴퓨터로 작성을 하다가 잠깐 화장실로 간 사이에 새어머니께서 제 컴퓨터를 보시더니 자기(새어머니)에 대해 쓰는 것이 아니냐면서 화를 내셨습니다. 나는 절대 아니라고 하였지만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공장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장에서는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소독도 제대로 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라면만 먹어 결국 병원 가는 날 배탈이 났습니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병원 가는 것을 연기를 하자고 해서 연기를 하였고, 2011년 7월 7일 병원을 갔을 때 염증수치 검사를 하니 수치가 80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면서 X-Ray상으로 뼈가 잘 안 생겨 골이식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2011년 7월 21일 입원을 하였고 수술을 들어가기 전 정신과 치료부터 하고, 2011년 8월 8일 수술을 하여 가느다란 핀을 제거하고 깁스를 하였습니다.
 
2주 뒤인 2011년 8월 22일 깁스를 풀고 처음에 수술했던 일리자로프 링으로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입원해 있는 동안 염증수치를 체크하였는데 계속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아님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고 반복을 하여 골 이식수술을 하는 것을 계속해서 미루었습니다. 처음으로 정상범위로 떨어졌을 때는 추석이 지나고 일주일 뒤에 수술 날짜를 잡았는데, 교수님께서 자신 있게 수술 들어가기 전 인공뼈를 넣든지 하겠다고 하더니 다시 충분히 검토를 하셨는지 주치의 선생님을 통해 들은 이야기로 골 이식 수술을 하지 않기로 최종결정이 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항생제 주사도 맞지 않아 2011년 9월 17일 퇴원을 하였는데, 새어머니 집으로 가지 않고 아버지께서 집을 구하여 그리 갔습니다. 원래는 2011년 10월 6일 병원을 가야했지만 아버지께서 바빠 2011년 10월 20일 예약을 하여 갔는데, X-Ray를 봤는데 수술을 하지 않길 잘했고 뼈가 많이 생겼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빼기는 이르고 한 달 뒤나 두 달 뒤에 푸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외래는 11월 17일이지만 척추측만증으로 장애인 등록을 하기 위해 한 주 당겨 2011년 11월 10일에 병원에 갔을 때, 교수님께서는 지난달 보다 훨씬 더 좋아지긴 했지만 두 개 구멍에서 뼈만 차면되고 한 달 뒤에 오면 빼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처음 염증이 생겼을 당시에는 올해 들어 집안 문제가 생겼고 아버지의 채무 때문에 사채업자들이 저에게까지 전화를 하고 집까지 찾아와 초인종까지 누르기도 했습니다. 결국 한 대출은행에서 현관을 강제로 열고 들어와 빨간 딱지까지 붙이고 갔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희 집이 엄마 앞으로 되어 있었는데, 경매로 넘어가기 직전이었습니다.
저는 이러저러한 스트레스가 가중되어 염증이 발생되지 않았는가 추측해보았습니다. 또한 주변의 환경(담배영향, 스트레스) 등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원래 염증이 생기는 것은 소독을 잘 안했을 때 생기지만 저 같은 경우는 스트레스 및 담배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