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찬병원

게시판

환자와 함께 걸어가는 대찬병원 소아기형·왜소증클리닉입니다.

[일반-키 연장술] 길어진 다리만큼 마음의 키도 커졌..

관리자2023-01-30
왜소한 체구지만 귀엽단 소릴 들었던 학창시절
저는 어릴 때부터 왜소한 체구와 키로 늘 출석번호가 5번 이내 였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당시엔 157㎝로 또래 친구들에 비해 작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하여 사춘기가 되면 키가 당연히 크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항상 앞 번호에 머물렀고 저와 비슷하던 친구들은 눈에 띠게 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나마 어릴 땐 귀엽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만, 나만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불안하고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매년, 5~6㎝ 정도씩 자라던 키가 더 늘기는커녕 3-4㎝ 정도로 성장속도가 줄어들게 되자 부모님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부모님 키는 보통이셨지만, 한 살 위의 형은 183㎝, 중학생인 여동생은 165㎝ 의 평균 이상의 키였기에 부모님은 저도 당연히 때가 되면 크리라 믿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또래 친구에 비해 더디게 자라는 저를 보고 조급함과 심각성을 느끼시게 되어 모 대학의 성장 클리닉을 찾게 되었습니다. 여러 검사를 한 결과 성장판이 거의 닫혀 가는 중이어서 더 이상 키가 크지 못할 거라는 진단에 부모님과 저는 크게 좌절하였습니다.
어머님은 일찍 손을 못 쓴 것을 후회하셨고, 조금이라도 더 커야겠다는 생각에 몇 달 동안이지만 호르몬 주사도 맞았고, 키가 큰다는 유명한 한약도 꾸준히 복용하였습니다. 하지만 키는 노력만큼 크지 않았고, 그만큼 키에 대한 컴플렉스만 커져 갔습니다.
더구나 운동을 좋아하는 저는 축구와 농구를 할 때, 몸싸움에서 밀리기 일쑤였고, 기를 쓰고 최선을 다하여도 선천적인 체격의 한계를 느끼곤 하였습니다.
 
대학 입학 후, 군대 신검을 받게 되었는데 내 키는 163.8㎝! 설마 하는 생각에 미심쩍어 병원에서 다시 잰 키도 164㎝로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조금 창피한 생각에 누가 물어보면 166㎝, 167㎝로 올려 말하고 밖에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친척모임이 있으면 굽이 높은 키 높이 신발을 신어 키에 대한 컴플렉스를 이겨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평생 이런 식으로 키 커 보이는 노력을 하고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에 키가 작다는 사실이 원망스럽고 후회가 들었습니다.
작년 가을쯤 모 대학 여학생이‘키가 180㎝ 이하는 모두 루저(Looser)’라는 발언을 하여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별 생각 없이 방송 중 재미를 위해 한 말이었겠지만, 사회가 얼마나 키 지상주의 또는 외모 지상주의로 가는 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중 ․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남학생만 득실대는 곳이어서 그다지 외모에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하면서 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남녀공학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스포츠미디어학’을 전공하면서 많은 동기, 후배, 선배들을 만났고, 다른 과 학생들과도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같이 어울리는 것은 좋은데 어찌 된 일인지 저보다 작은 남자들은 거의 본 적이 없었습니다. 도무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운동을 하였길래 저렇게 크나’라는 생각만 머리 속에 가득했습니다. 군 입대 전 소개팅을 한 적이 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밖에 걷게 되었는데 여학생이 저와 키가 비슷한 것을 알고 창피해 하는 듯 했습니다. 정말 키가 작은 게 무슨 죄인지 이처럼 비참하고 자존심을 구겨야 하는지… 사실 몇 차례 소개팅을 받으려 해도 키 때문에 성사되지 못 하였고, 평생 여자 친구 한 번 못 사귈 수도 있겠다는 걱정 아닌 걱정도 해 보았습니다. 다른 매력을 보여주려 해도 기회를 주지 않으니 말입니다.
 
광고보고 결심한 수술
군대 제대 후 복학하여 학교를 다니다가 어학연수를 위해 휴학을 하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강남 지하철을 걷다가 키가 크는 수술이 있다는 광고를 보고 전화번호를 가지고 왔습니다. 평소 저보다도 더 마음 아파하시는 부모님이 한 번 문의나 해 보자며 강남에 있는 모 정형외과를 찾게 되었습니다.
키 크기 수술에 대해서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었고, 주변에서 본 적도 없었기에 전 별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곳에서 들은 수술에 대한 얘기는 너무나 희망적이고 저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3개월 정도면 8~9㎝ 정도 키가 늘어날 수 있고, 6개월이면 보행도 가능하다는 말에 수술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준비 중이던 어학연수 계획도 멈추었습니다.
수술 날짜를 상의하던 중에 아버지께서는 당신과 절친한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께 문의를 해 보셨습니다. 그 분께서는 그 수술이 그저 간단한 수술이 아니니 한 번 더 진찰을 받아보고 결정하라고 신신당부 하셨답니다. 저도 급히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버님 친구 분이 수소문하여 추천해 주신 고려대학교구로병원의 송해룡 교수님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외래 예약이 된 날 난 지금도 그 광경을 잊을 수 없습니다. 교수님의 방 앞은 환자들로 가득 차 있었고, 특히 키 작은 왜소증 환자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교수님은 여러 방을 오가며 바쁘게 진료하고 계셨습니다. 내 순서가 되어서 내 상태를 교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교수님은 재차 저의 의지를 물어보셨고, 수술을 먼저 경험한 환자를 만나서 제가 다시금 심사숙고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일리자로프를 한 환자들의 모습을 보니 나는 조금 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설레임과 희망이 사라지고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어머님 또한 일리자로프를 한 환자의 모습을 처음 보시고는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고, 환자 부모님의 설명을 들으시고는 다시금 수술 결심이 흔들리는 듯 하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인터넷을 보면서 일리자로프 수술에 대해 검색해 보았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면서 갑자기 겁이 나고‘부작용으로 다리를 못 쓰는 것이 아닌가’걱정이 되면서‘평소 운동을 좋아하고 체대를 다니는 내가 그런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수술을 받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 역시 수술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시며 실망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잠시 가졌던 희망을 생각하니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학연수는 다음에도 갈 수 있지만 이 수술은 지금이 아니면 힘들 것 같고 후회가 될 것 같아 다시금 도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부모님도 내심 걱정하면서‘1년 고생해 보자’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이 수술은 보험도 적용되지 않아 경비가 무척 많이 들어 경제적인 부담감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혹자는 비용도 많이 드는데 별 짓을 다 한다고 비아냥대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조금이라도 커서 잃었던 자신감을 찾고 싶었습니다.
 
수술 날짜를 잡고 수술 전 검사를 하는 동안 같은 수술을 한 두 명의 환자를 보았습니다. 처음은 작년 11월에 수술한 Y군이었고, 두 번째는 저보다 10여일 전에 수술한 S군이었습니다. Y군은 몸이 약해서인지 몹시 힘들어하였고 염증도 생기고 물도 차서 고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전화하여 물어보라고 친절히 알려주었습니다.
한편 2주 전 수술은 한 S군은 아직은 통증도 거의 없고 수술 부위가 깨끗하여 크게 힘들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두 분의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서 수술을 하게 된 동기와 수술 후에 얼마나 아픈지, 문제점이 무엇인지, 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비용은 구체적으로 얼마나 드는 지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마음의 결정을 하고 수술 날짜를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갈등과 고민은 계속되었습니다.
‘젊은 놈이 그런 핸디캡 하나 극복 못 해 부모님과 제 자신을 괴롭히나’ 하는 자책도 들고 한편으론 ‘군대도 다녀왔는데 일 년 더 고생해서 앞으로의 삶을 당당하고 자신 있게 꾸려봐야지’ 하는 의욕이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두려웠던 것은 여러 차례의 수술도 무서웠지만 수술 이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지, 혹시 장애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그 점이 걱정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도 큰 모험이었고,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나는 수술실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갈등하고 고민하였습니다.
 
드디어 3월 16일로 수술 날짜가 잡히고 수술 3일 전인 토요일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입원 수속을 받고 병실에 입원을 하였는데 같은 병실에서 만난 또 한 명의 환자를 보고 몹시 흔들렸습니다. 왜냐하면 일리자로프 수술을 받은 20세 대학생이었는데 1월 수술 후 큰 후유증과 알콜 소독약 알러지로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님은 제가 딱해 보였는지 ‘키 작으면 어떠하냐. 건강한 것이 최고다’ 라며 걱정스럽다는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부모님과 저는 크게 흔들렸고, 이를 어쩌냐 수술 날짜까지 잡은 마당에 나갈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긴 갈등의 시간을 보낸 나는 이제는 수술을 안 해도 후회하고 해도 후회할 것만 같았습니다. 계속 고민을 했지만,‘나도 모르겠다. 이젠 무조건 가는 거다!’라는 생각으로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교수님을 무조건 믿고 따랐던 수술
2010년 3월 16일 화요일 오전 9시에 들어간 수술은 송해룡 교수님의 집도하에 준비시간, 수술 시간, 회복시간까지 약 5시간이 걸렸습니다. 회복실에서 마취가 풀린 후, 병실에 올라와 보니 뚱뚱하게 붕대로 감겨져 있었고 움직이기도 힘들었습니다.
갈등도 많이 했지만 일리자로프를 수술한 내 모습을 보니 이제야 실감이 나면서 긴 고행의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술 후 회진 시, 송해룡 교수님께서 수술이 잘 되었다며 위로와 주의사항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제부터‘교수님의 말씀이 법이고 진리다. 무조건 믿고 따르리라’다짐하였습니다. 사실 수술하기 전 날 주치의 선생님이 받아 가신 수술동의서에는 여러 가지 일어날 수 있는 예후를 들려주었는데, 그땐 엄청 겁이 났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선생님들을 믿고 그대로 실천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술 3일 후에 붕대를 풀었더니 약간의 붓기가 있었습니다. 냉찜질을 통해 붓기를 빼고 4일 후에는 병원 지하 1층에 있는 스포츠의학실에 가서 목발로 짚고 걸을 수 있게 워커를 이용하여 서 보라는 교수님의 판단에 따라 1~2바퀴 걸어보게 되었습니다. 찔려 있는 철은 불편하고 통증도 약간 있었지만, 아직은 진통제의 효과인지 심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스포츠의학 선생님이 걷는 모습을 보고 주말이 지나면 목발로 걸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목발 사용법과 중심을 잡고 걷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처음엔 한 발자국 딛는 게 힘들었지만,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연습하였더니 병실 화장실과 양쪽 병동을 반복적으로 오고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병실에서는 어머니와 간병사의 도움을 받았는데 퇴원 날짜가 다가오니 집에 가서 어떻게 생활할 지가 걱정이었습니다. 계속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화장실 가고 씻는 문제는 스스로 해야 했습니다.  
수술 이후 간호사 선생님이 3일 정도 깨끗이 박힌 철쪽과 주위를 소독하는 방법을 알려주셔서 아침, 저녁, 하루 두 번씩 소독을 혼자 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독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뼈를 뚫고 쇠를 박았기 때문에 세균과 보이지 않는 미세한 먼지가 박힌 틈 사이로 들어와 염증을 일으킬 수 있기에 알코올 소독은 철저히 해야 합니다.
수술 1주일 후 먼저 0.5㎜씩 늘이기 시작했고 며칠 지난 후 부터는 1㎜로 바꾸어서 늘이게 되었습니다. 수술 2주일 후, 수술 부위의 실밥을 뽑고 퇴원을 하게 되었는데, 병원에서는 의사 선생님들의 관리 하에 있었는데, 이것을 집에서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불안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퇴원을 하게 되니까 스포츠의학실에서는 혼자 할 수 있는 스트레칭과 뒷발굽을 땅에 닿기 위해 힘주며 걸어다니기, 그리고 끈으로 발을 잡아당기는 운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운동은 6㎝ 이상 늘였을 때 오는 까치발을 예방하고 늘어나기가 쉽지 않은 아킬레스건에 영향을 준다고 꾸준히 연습을 당부하셨습니다.
 
퇴원 시, 교수님께서는 2주에 한 번씩 외래에 올 것과 평상시와 똑같이 생활하면서 운동을 많이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매일매일 1㎜씩 늘리면서 한 주 한 주가 지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통증이 조금씩 왔는데 키가 3~4㎝ 정도 자란 시점부터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평상시 생활하고 걷기운동 등을 할 때는 통증이 적은데, 잠을 자야할 밤은 정말 답답하고 고통스러워 소리 지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3㎝ 이상부터는 가끔 처방해 주신 진통제의 도움을 받았지만 2~3시간 정도 약효가 있을 뿐 자다 깨서 뒤척이는 나날이었습니다.
 
입원 당시 앞서 말한 Y군의 2차 수술(까치발 수술)상태를 보았기에 ‘열심히 연습해서 까치발 수술을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늘어나지 못한 다리 뒷근육(아킬레스건)을 늘이기 위해 발등에 두 개의 링을 장치하고 나사를 돌리며 늘려야 하는 번거로운 또 다른 고충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링에 박힌 양쪽 나사를 풀어서 네모난 점의 숫자를 1부터 4까지 방향을 맞추어서 돌리면 하루 1㎜씩 늘어나게 되는데 규칙적으로 늘여도 양발의 차이가 약 3㎜ 정도씩 차이가 나곤 했습니다. 너무 차이가 나면 한쪽 뼈가 빨리 자라서든가 아님 느려서 그런 경우가 생긴다고 하는데 심하면 긴급처방이나 다시 부분 수술을 받아야 하므로 규칙적으로 늘이고 외래에 정기적으로 가서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끔씩 염증으로 열이 나는 경우에는 늘이는 것을 포기하고 빼야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염증은 피검사를 통해서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데, CRT 수치가 5 정도면 정상이고 교수님의 판단에 따라 너무 심하다 할 정도는 항생제 약을 복용하여 수치를 떨어뜨려서 염증을 없애게 만들어줍니다.
2주에 한 번씩 X-Ray를 통해 뼈를 확인하는데 잘려져 있는 뼈 사이에 뼈가 차오르는 과정이 신기하지만 시간이 더디어서 ‘내 뼈는 언제 자라나’ 생각하면서 지치기도 하였습니다.
얼마 동안은 뼈가 생성되지 않아 늘이지 않고 뼈의 생성을 기다리기도 하였습니다. 늘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늘린 만큼 새 뼈가 따라와 주는 것이 관건이라 하셨습니다. 이러다 보니 예상시간 보다는 훨씬 길어지는 것 같았고 무더운 여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근육량이 줄어서 현격하게 얇아지고 눈에 띠게 길어진 다리를 보면 신기하고 흐뭇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따르는 고통의 시간이 길게 느껴지고 지쳐만 갔습니다. 다른 환자보다도 비교적 문제없이 진행되었는 데도 말입니다.
그 와중에 얇은 뼈(TIBIA) 쪽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7월 21일 경 외래에 와서 X-Ray로 확인한 결과, 얇은 뼈가 빨리 자라서 늘어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뼈가 빨리 생성되지 않는 것도 문제이고, 너무 빨리 붙어버리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교수님은 당일 외래수술로 30여분 만에 굳어가는 얇은 뼈를 자르고 핀을 박아서 고정시키는 걸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수차례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교수님의 노련한 대처능력에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재활운동의 종류
교수님은 외래에 갈 때마나 운동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는데 운동을 많이 해야 뼈도 빨리 자라고 굳어가는 근육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링이 박혀 있기 때문에 운동에 제한이 있었습니다. 생활도 불편했지만, 가장 힘든 건 잘 때였습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자세가 변하기 때문에 무릎을 구부리고 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스포츠의학실에서는 무릎 피는 동작을 계속 훈련시켰습니다. 또한 높은 책이나 방석을 쌓고 뒤발굽 쪽에 대서 다리를 올린 후 허벅지 위에 환자가 버틸 수 있는 정도의 모래주머니를 올려서 시간을 정해 (5분~10분) 일일 2회 정도 하면 무릎이 구부러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동작은 까치발 예방하기 위해 끈으로 뒤쪽의 뒷발근육(아킬레스건)을 강화시키고 늘이는 자세입니다. 이 자세는 스트레칭과 연관이 있으며 종아리 쪽의 근력도 도움을 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가장 기본적인 운동입니다. 사이클과 비슷한데 팔운동을 위주로 하는 운동이 있습니다. 목발을 짚을 때, 하체에 부족한 힘을 팔로 버티게 해주는 역할을 해 줍니다.
철이 뼈, 살에 박혀있기 때문에 아무리 운동을 해도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은 자연스럽게 빠집니다. 힘을 쓰는 운동이 제한이 되고 무리하면 잘린 뼈 쪽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운동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최소한의 근력을 남겨두어야 링을 끼고 생활을 할 때, 지치는 체력을 버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침대에 걸쳐서 다리를 펴고 들어올리는 운동입니다. 허벅지 근육을 키워주고 쫙 펴지기 힘든 무릎을 펴게 해주기 때문에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는 동작입니다.
양쪽 다리를 한 쪽씩 들어올리는 동작은 허벅지, 허리힘, 종아리 힘 쪽에 근력을 강화시켜줍니다. 그 부분이 당겨진다는 느낌이 든다면 효과를 보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걷는 건 필수인데 자세가 중요합니다. 목발이 발 앞쪽에 있어야 되는 것은 물론이고, 약 20도 정도 구부려서 뒤쪽의 발굽에 힘을 실어주어서 땅에 닿게 해 주어 까치발을 안 되기 위해 하는 가장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운동입니다.
스트레칭 동작 중에 예를 들면 오른쪽 다리를 앞에 구부리고, 또 왼쪽은 뒤쪽으로 쫙 펴서 뒷굼치를 땅에 닿게 하는 운동입니다. 쉽게 늘어나지 않는 아킬레스건을 늘려주기 위해 하는 동작으로, 일반사람들도 이 동작을 하면 쉽게 닿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일리자로프 수술을 한 환자는 위의 설명이 도움을 주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딱히 소개를 더 하고 싶으나 우선 몇 동작들을 글로 풀어봤습니다. 스포츠의학실에서 배운 동작들도 많은데 집에서는 할 수 있는 동작들이 제한이 되어 있습니다. 위에 설명한 동작들 정도면 까치발 정도와 떨어지는 근력을 최소한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제 경험에 의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길어진 다리만큼 정신적인 키도 크겠다
내가 일리자로프 수술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젊은 놈이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구는 것이 쉽지 않았고, 점점 커지는 통증의 시간도 참기 어려웠습니다. 이럴 때, 폭발할 것만 같아 내가 무슨 짓을 할 것인지 후회스러울 때도 많았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나 외래에 갈 때, 밖에 나가면 길 주변의 사람들이 놀라면서 ‘어머어머! 너무 아프겠다. 저게 뭐지?’ 하면서 놀라곤 합니다. 이런 시선도 부담스러웠고, 나를 아는 동네 주민들과 친구들은 지금도 내가 어학연수 간 줄 알고 있는데, 만나지 못하고 운둔생활을 하는 것도 무척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키 때문에 고민하고 우연찮게 일리자로프 수술을 하면서 겪은 과정을 쓰다 보니 길었던 고통의 시간조차 빠르게 지난 듯 느껴집니다. 그러면서 늘어난 다리를 보면 잘 참았다는 생각에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합니다.
수술을 받기 전에는 백지 상태로 먼저 경험한 환자들의 조언을 구하곤 하였는데 이젠 앞으로 수술하려는 환자들에게 궁금한 점들을 가감없이 알려줘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때로 조언을 구하는 환자분들에게 어떻게 도움을 드려야 할지 난감합니다. 지극히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선택이라서 섣불리 하라 말라 할 수가 없습니다.
 
가장 많은 질문 중에 얼마나 아픈가, 참을 만한가, 비용은 얼마나 드나? 내가 먼저 했던 질문들입니다. 당연히 몸에 칼을 대고 뼈에 쇠를 박아놨는데, 어떻게 안 아플 수가 있고 긴 시간이 필요한데 얼마나 많은 인내가 요구되는지를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본인의 의지가 확고해야 된다고 느낍니다. 너무 아프고 힘들지만 믿고 지켜보는 가족과 본인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싫어서 이를 악물고 참아내고 있는 것 뿐입니다.
평균 2주에 한 번씩 외래에 가는데 진료를 받기 전 X-Ray와 피검사를 하고 나면 그 동안의 늘인 길이와 염증 수치, 걷는 모습 등을 통해 2주간의 노력에 대해 교수님이 평가하고 문제점을 지적해 주시면서 주의해야 될 점을 꼼꼼히 체크해 주셨습니다.
처음이어서 걱정도 많고 질문을 자주, 많이 하는 통에 교수님을 꽤나 귀찮게 해 드렸습니다. 그래도 교수님은 늘 위트있고, 유머 러스하셔서 귀찮음에도 불구하고 밝은 모습으로 질문에 응해 주셨습니다. 정말로 제 눈엔 모든 환자가 선생님의 친구나 가족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외래에서 선천적인 기형으로 고생하시는 왜소증 환자들이 수술을 받거나 받으시려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절실하게 송해룡 교수님의 손길을 필요하는 분들이 저를 보면 혹시 사치라고 손가락질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외모에서 오는 마음의 병을 없애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산 날보다 살날이 많은 젊은이로서 좀 더 나은 기회를 갖고 싶었습니다. 저는 170㎝ 정도로 키가 커진 내 모습을 상상해 보고, 군대까지 다녀온 저에게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으로 착각하지 않은 몸과 마음의 성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아직도 중요한 수술과 힘든 시간은 끝나지 않았지만 이 모든 것이 끝나면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친구도 만나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지겨운 환자복 벗고 멋도 내고 싶습니다. 정상의 몸이 되면 양복 한 벌 사 입고 고려대학교구로병원의 송해룡 교수님을 찾아뵙고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저를 지치지 않게 다리와 마음을 돌보아 주신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교수님을 만난 것을 개인적으로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교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였기 때문에 무난히 이 과정을 견딘 것 같습니다. 제게 기회를 주신 부모님과 훌륭한 의술을 베풀어 주신 송해룡 교수님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 길어진 다리와 더불어 정신적인 성숙도 길어지기 위해 노력할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결심해 봅니다.
 
까치발 수술
그러나 어느덧 수술하고 링을 차고 생활한 지 6개월이 흘렀습니다. 8월말 외래에 갔더니 X-Ray 상에 약 9㎝ 정도로 늘어나 있었습니다. 그날 교수님께서 그만 늘이고 까치발 수술을 해야 된다고 말씀하시며 바로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처음 수술을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까치발 수술을 한 양군의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고는‘열심히 운동하여 나는 절대로 까치발 수술을 하지 말아야지’하던 다짐은 어디 가고 마네킹처럼 쭉 뻗어 굳어진 발등을 보자니 아쉽고 후회스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군이 까치발 수술 후 화장실도 못 가고 생활의 불편을 겪으며 끙끙대는 입원 생활을 봤기에 첫 수술보다 더 걱정되고 불안해졌습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니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수술을 위해 이틀 전 입원을 한 후 주치의 선생님으로부터 대략적인 수술 시간과 수술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도 수술하면 훨씬 걷기도 수월하고 2~3개월 정도면 링을 풀고 걸을 수 있을 것이라며 용기와 희망을 주셨습니다.
수술 날 아침 8시 정도에 시작을 해 대략 5시간 정도 후인 오후 1시쯤 회복실에서 나와 병실로 갔습니다. 붕대로 칭칭 감기어진 다리는 첫 수술 때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3일 후 붕대를 풀고 뒷발꿈치와 앞꿈치(발가락 근처)에 핀(한 쪽 발에 4개)이 박힌 발과 2개의 링이 더 달린 것을 보니 먼저 경험한 환자들이 왜 힘들다고 했는지 알 것만 같았습니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늘이는 방법을 알려 주셨는데 뼈를 늘일 때와는 달리 근육을 늘이기에 하루에 1㎜씩 3번, 즉 3㎜를 늘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아픈 것을 느끼지 못했는데 2주 정도 지나자 잠을 못 잘 정도로 갑자기 아파졌습니다. 가뜩이나 박힌 링 때문에 불편한데 통증까지 오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체중도 많이 줄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뼈를 늘이면서 돌아간 왼쪽 발목과 각도가 정상적으로 되어 갔고 까치발도 눈에 띄게 정상으로 올라오고 불안한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발등에 핀이 박혀서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있었지만 발밑에 링을 달고 있어서 걸을 수는 있었습니다. 까치발 수술을 하고 난 후 운동은 제한이 되어 있지만 할 수 있는 동작이 몇 개 있습니다. 다리를 굽지 않게 하기 위해 누워있을 때, 다리를 높게 올릴 수 있는 쿠션 등을 놓고, 허벅지에는 무게가 있는 모래주머니를 올려서 10~15분 정도 버티게 하면 나도 모르게 적응이 되어서 자연스럽게 펴지게 됩니다. 침대에 다리를 올렸다 내리는 동작도 매일 시간을 정해서 10회 3세트 정도 하면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에 힘을 보태줄 수 있습니다.
추석을 병원에서 보낸 후 X-Ray를 찍었는데 뼈의 각도가 거의 다 올라와서 곧 뺄 수 있겠다 싶었는데 교수님께서 서둘러 빼면 운동 부족으로 다시 까치발 되는 경우도 있고 그럴 경우 재수술의 고생을 할 수 있다며 안전을 위해 천천히 빼는 것이 낫겠다고 하셨습니다.
 
긴 6주간의 시간이 지나고 일리자로프의 링을 관리하시는 선생님께서 발쪽의 핀을 빼주셨습니다. 마취 없이 나사를 풀고 핀을 쉽게 빼기 위해 잘라서 툭툭 빼는데 걸리는 시간은 5분여의 짧은 시간이지만 길게 느껴질 정도로 아팠고 그날 하루 종일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맨발로 서보니 뒤꿈치가 바닥에 닿고 일어설 수가 있었습니다. 뒤꿈치를 대고 서 보니 감개무량 하였습니다. 나름대로 또 한 고비를 넘겨서인지 여유가 생겼지만 한편으론 조급함과 답답함을 더욱 더 느끼게 되었습니다.
경험자의‘처음보다 마무리 시점이 더욱 힘들다.’란 말이 생각났습니다. 뼈의 길이를 늘이고 있을 때는 커져가는 통증과 소독 등으로 시간이 어찌 지났는지 몰랐지만 까치발 수술까지 끝나고 나면 소독 외에는 달리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더욱 더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본의 아닌 1년여의 은둔 생활에서 오는 답답함이 한계에 다다른 그런 느낌 말입니다.
까치발 핀을 뺀 후 2달여가 지나서 링을 풀게 되었는데 X-Ray 촬영에서 오른쪽이 왼쪽만큼 뼈가 차오르지 않아 우선 왼쪽만 링을 빼게 되었습니다. 깁스실에서 핀을 빼고 깁스를 하고 보조기도 맞추었습니다. 둘 다 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한쪽이라고 빼고 나니 ‘이게 내 다리인가’ 싶어 계속 만져 보았습니다.
 
3주마다 외래에 가서 오른쪽 다리 상태를 확인하였고 그 사이에 왼쪽은 깁스를 풀고 보조기를 차고 보행하였습니다. 오른쪽은 뼈가 더디게 자라는 바람에 왼쪽을 빼고 난 두 달여가 지나서 링을 빼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뼈의 상태로 보아 조금 더 있었으면 하셨지만 너무 장기간 핀에 박혀서인지 염증이 계속 생겼습니다. 한 번은 열감과 통증을 느끼게 되었는데 가끔 있는 일이라 무심코 넘겼으나 밤새 링 중앙에서부터 발목까지 퉁퉁 붓고 열이 나며 다리가 무거워져 걸을 수조차 없어 엄마와 함께 새벽에 응급실을 갈 정도였습니다. 피검사 결과 염증 수치가 110 정도까지 올랐던 것입니다. 며칠 입원하여 주사로 염증 수치를 낮추고 붓기를 떨어뜨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한쪽 뼈가 덜 자라는 것도 부담인데 염증으로 속을 썩이니까‘혹시 기능상 잘못 돼버리면 어떡하나’걱정도 되고 우울하기도 하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양쪽의 링을 다 풀고 지금은 스포츠의학실에서 재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기능은 먼저 풀었던 왼쪽 다리의 상태가 좋은 편이고, 늦게 풀은 오른쪽 다리의 근육을 늘리기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지금 정상의 다리로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비교적 수술 예후가 좋았던 내가 막바지 단계에서 염증으로 고생을 하여 부모님과 교수님을 많이 힘들게 하였지만, 결국은 신뢰를 가지고 교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았습니다. 제 생각보다 진행이 늦어 답답하기도 하였지만 어느덧 링을 빼고 운동을 할 때면 무언가 어색하기도 하고 가벼워진 느낌이 듭니다. 근력의 양이 현격히 줄었기에 재활하기도 엄청 힘들지만 정상의 다리로 2학기 복학을 기대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일 년의 시간은 내 생에서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수술 결정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상상치도 못 했던 일이었습니다. 부쩍 짧아진 바지 길이를 보곤 지난 고생을 잊습니다. 못나고 부끄럽지만, 키가 짧았던 고생했던 마음의 병도 고친 듯 합니다.